전시작가 : 심철웅 노진아 전승일 허윤정
전시일정 : 2025.01.14 ~ 02.02
관람시간 : Open 12:00 ~ Close 18:00 (화~일)
전시장소 : 갤러리 더플럭스 더플로우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 2층 / 02-3663-7537)
현대사회는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기술이 일상화 되어갈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이 다양한 차원에서 인간의 사회와 문화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인류는 AI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발전과 확장을 가져오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 문화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대체하는 본질적 차원에서의 상상 이상 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지 등 AI가 파생시킬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AI 기술이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차원에서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후 다가올 변화의 향방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AI 기술로 인한 영향력이 그 폭과 깊이에서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AI 기술이 인간의 지적 활동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능 자체를 초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인공지능의 개선과 진화에 대해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올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AI 기술이 가져온 변화는 미래에 예측되는 어느 한 지점 이후부터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고 이를 동시대인이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현재의 상황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체학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카메라는 인간 시각의 확장이며, 차량은 인간 발의 확장이고, 집은 우리의 외피인 촉각의 확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두뇌가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의 감각과 인식, 기억과 사고와 같은 뇌과학적 영역으로부터 기존의 인간 의식이나 무의식 또는 주체와 타자 그리고 인간 심리와 철학의 영역까지 다시 점검해보아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특별히 최근의 AI 기술 혁신은 딥러닝과 같은 자연어 처리 분야의 혁신이 언어학습에 변혁을 일으키게 된 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언어를 비롯하여 인류의 상징체계가 이식되어 AI로 확장된 것은 매체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확장이 어떤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심층적 점검이 필요한 상황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적 존재로서 언어 및 상징체계를 기반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가운데 사회를 기반으로 살아온 존재라는 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디 개체와 개체가 서로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고 볼 수 있다. 라캉(Jacques Lacan)이 인간의 무의식이 ‘타자의 담론’이며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하였는데 이는 인간이 언어와 같은 상징체계나 다양한 매체 등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점을 전제한 것이다. 미디어 철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évy) 역시 인간이 언어적 소통을 하는 존재인 것을 근거로 하여 이 소통이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하게 될 때 인류는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집단지성’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개인 주체를 근거로 한 과거의 고전적 주체관은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확장적 주체관은 AI 시대에 더욱 급격히 개념의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예술의 영역에 있어서도 AI 시대에 네트웍을 통해 연결된 타자로부터의 취득한 혼성적 레퍼런스를 근거로 하여 생성되는 AI시대의 예술작품을 고려해 본다면 원본성, 저자성에 대한 기존의 관점 역시 근본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기에 이제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한 개념 전체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번 전시에서 과거의 아날로그적 데이터와 미디어 시스템을 AI 시대에 어떻게 변환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온 심철웅 작가는 타자로부터 기원한 것들을 데이터라고 지칭하면서 AI 알고리즘에 의해 암호화된 기표들이 어떠한 것을 지시하거나 혹은 지시하지 않게 된 모호한 상황을 노출시키고 이것의 경계면에서 부유하고 있는 풍경을 생성해 내는 독특한 작업을 보여주게 된다. 기존의 인간 사회를 규정하는 상징계적 질서는 궁극적으로는 그 무엇도 지시할 수 없는 기표의 한계를 드러내며 모순적인 자기순환의 연결고리를 해체하는 상황에 이르는데 작업에서 이를 의미 지시성이 강한 명사를 사용하는 것 대신 ‘를’과 같은 조사에 의해 표시하는 등 그 뜻을 알 수 없는 중성적 기표만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관람자들에게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니체가 말한 한계 혹은 경계 너머로 몰락과 재창조를 반복하고 있는 초인(Übermensch)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 의지나 창조적 긍정의 에너지마저 보이지 않고 일견 온전히 텅 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기에 단지 무의미한 기표의 흔적만을 남겨놓은 것 같이 느낌을 준다. 여기에 남겨져 있는 이 텅 빈 기표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시하는 바는 없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순간순간 그 대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쉼 없이 관람자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게 만드는 역설적 도구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대화하는 사물 AI를 제작하여 언케니(Uncanny)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 경계 지점으로부터 작업해 온 노진아 작가는 대리적이거나 매개적인 지점에서 타자인 관객들이 한 인간으로서 오히려 주체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인간 존재에 대해 스스로 발견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때 상호작용하게 되는 대상은 인간과 유사해 보이는 형태로 인간을 닮아있을 뿐 기존에 인식해왔던 생명도 아니고 존재도 아니기에 이때의 상호 작용은 인간과의 소통이 아닌 AI가 만들어낸 허구적 상황일 뿐임을 동시에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대화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은 생생한 상호작용의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기에 이 상황이 허구적임을 인식한 이후에도 관객들은 대상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려 하거나 심지어 그 대상이 생명이 되고픈 존재일 수 있다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들어가며 여기에 더욱 심취하고 몰입하게 된다. 작가는 인간이 허구일 수밖에 없는 가상적 현실 앞에서 이를 받아들이며 누군가 만들어 놓은 연극무대와 같은 공간에 대해 이것이 현실이라고 이름 부르면서 그곳에 안주하고자 하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만큼 인간이 모순적 존재일 수 있음을 직시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작가의 관찰 적 위치를 고려해 본다면 오히려 이곳이 양자론적 관찰자 효과가 발생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복선적으로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AI 매체 기반의 독립영화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전승일 작가는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Tree> 작업에서 AI 기술을 사용하여 익히 알고 있는 나무의 형상을 소재로 하여 나무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나무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고 움직이는 회화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흥미로운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나무가 있는 풍경을 실사로 찍은 것이 아님에도 드로잉이나 회화적 표현에 AI가 생성한 무빙 효과를 덧입힘으로써 실제 나무 주변을 돌며 감상하는 것 같은 유사 경험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나무들이 있는 숲을 볼 때마다 인간을 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는 AI가 생성한 나무의 이미지들 바라보고 있지만 작가는 오히려 이를 바라볼 때마다 이미지를 읽어내기 위해 자기 내면에 있던 인간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인식 매커니즘 자체를 내용으로 가져오게 된 것이다. 작가가 나무에서 인간 이미지를 읽어내게 되는 것은 나무 이미지에 투사된 작가의 게슈탈트(Gestalt)적 관념 층위에 불과한 것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AI의 기술적 오류에서 발생되는 일종의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에 비견되 는 현상에 대해 작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를 자신의 작업에 창조적 발상의 재료로 엮어내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 인식의 오류 가능성을 노출시키면서도 인간이 여기에 창작이라는 맥락을 개입시키고 대체적 방식으로 창작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내고 저자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작업을 해내고 있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이를 AI 생성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대체 방식을 대비시키듯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매체이론과 AI 생성 논리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함께 이를 작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허윤정 작가는 체크포인트(check- point) 생성이 가능한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인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을 사용하여 자신의 작품 54개를 학습시킴으로써 작가의 기존 작업 경향의 결과물들을 얻어냈다. 이 작업 과정에는 데이터에 노이즈를 더해가는 정방향 확산과 노이즈로부터 복원하면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역방향 복원을 진행하였는데 이때 작가가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기존의 원본을 재구성하고 재현(represent)하기보다는 새로운 진본을 생성(generate)하였을때 이 작업의 원본성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는 지점인데 작가는 이를 ‘재매개된 AI 아우라’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그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은 원본이 사진 등의 방법으로 기술 복제될 때 ‘아우라’ 지각의 몰락을 예상했지만 작가는 AI에 의해 원본이 그대로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원본에 녹아있는 저자성의 일정한 성향을 분석하여 복제보다 생성의 방식에 의해 일종의 새로운 원본을 제시하면서 아우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AI 시대 이후의 예술작품에 대해 창작 주체에 대한 문제와 저자성, 그리고 예술 작품의 아우라 문제까지 다양한 논의의 화두를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AI가 가져온 변화로부터 이후 논의가 필요한 예술의 본질적 영역으로부터 매체와 기술적 변화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을 작업을 통해 점검해보면서 기존의 제 개념에 대해 재검토와 성찰을 해 보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물론 어떤 결론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을 예상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들을 만들어감으로써 이후 시대의 예술의 향방을 모색해 보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전시기획자 이승훈
상영작품
AI 실험애니메이션 <Sensitiv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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